상주는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다. 터를 잡는데는 반드시 뒷면에 진산(鎭山)을 업고 평지에 시가를 형성하는 것이 풍수의 정설이다.
상주는 천봉산(天鳳山, 435.8m)이 진산(鎭山)이다. 남쪽으로 뻗은 줄기에 시산산성(柴山山城)이 있고 그 밑에 북천이 흐른다.
임진왜란때 왜적과 크게 싸운 북천전장(北川戰場)이 이 곳이다. 진산이 있으면 반드시 안산(案山)이 있어야 하는데 상주시 지천동과 낙동면 비룡리 사이에 있는 갑장산(甲長山, 805.7m)이 바로 안산의 역할을 한다.
산의 북쪽 정상에 산형이 연꽃봉우리 같이 형성된 곳이 있어 구룡연(九龍淵)이라 부르고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으며, 이에 연원하여 연악(淵岳)이라 부르기도 한다.
조선시대 지리서인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상주는 옛날 중국의 낙양(고대 중국왕조의 수도)에 비교되었고 조령 아래의 한 큰 도회(都會)이다. 산세는 웅장하고 함창평야와 상주분지의 넓은 들이 있기 때문에 예부터 곡창지대로 불리워져 왔다.
북은 조령에 가까워 충청, 경기와 통화고 동은 낙동강에 임해 김해, 동래에 통한다. 육운(陸運)이나 수운(水運)이 다 남북으로 통하여 수륙교통의 요지를 이루어 편리하므로 부자도 많고 이름난 유학자와 관리도 많다』고 했다. 이 외에도 『신라때부터 큰 부(府)가 되어 교통이 사방으로 통하여 편리하며 산천의 수려한 것과 인물의 번성함이 도내 여러 고을의 으뜸이다』고 했다.
『상주 지형은 호랑이가 엎드렸다 일어나는 현상이다』
『상주는 행주혈(行舟穴)로 배가 물 위에 떠 있는 형상과 같다. 그래서 동편에 동해사의 이름이 생겼다』
『우복동(牛腹洞)의 이상향이 상주에 있다고 한다』등의 기록이 남아 있다.
이상을 종합해 보면 상주는 조령 이남에서 가장 큰 고을(尙=上=으뜸)로 인심이 순후하고 인물도 많이 배출되었고 사람살기 좋은 곳으로 이름이 난 명당임에 틀림없다.
글.박태봉
|